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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직할시평양직할시(한자: 平壤直轄市, 영어: Pyongyang)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이자, 최대의 도시이다. 면적은 3,194㎢평방킬로미터로 국토의 3%를 차지하며, 인구는 약 314만 명이다(1999년). 에 있다. 주소를 적을 때는 직할시를 붙이지 않고 그냥 ‘평양시’라고 적는다. 소비에트 연방의 도시들과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967년부터 인구 증가 때문에 편의 시설과 아파트가 많이 건설되었다.
[편집] 개요북쪽과 동쪽과 서쪽은 평안남도에, 남쪽은 황해북도에 접한다. 평양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때부터 사실상의 수도였지만, 헌법으로는 정식 수도가 된 것은 1972년부터인데 이전에는 서울이 수도였다. 옛날에는 고구려의 수도였다. 시의 중심에는 대동강이 흐르고 있고, 교외에 보통강과 대동강의 지류로 여겨지는 합장강, 남강이 흐르고 있다. 1970년대에 보통강은 해 마다 여름이 되면, 홍수가 발생하여, 농업이 어려웠으나, 김일성주석이 직접 지시하여 보통강의 관개공사를 실시함으로서, 홍수 피해가 적어지고, 농업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김일성주석이 보통강을 옥토,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게 하였다고 말하며, 보통강구역에 기념탑이 건설되었다. 보통강근처에 보통강유원지가 있어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평양직할시은 낮은 구릉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평야가 많아 농업이 발달했다. 주요 산은 만경대구역에 있는 룡악산, 중구역에 있는 창광산, 대동강구역의 문수봉이 있다. 대부분 산은 휴양지나 유원지로 만들어졌다. 중심은 중구역이며, 가장 번화한 거리는 창광 거리와 영광 거리, 그리고 광복 거리와 통일 거리이다. 수도 중심부에 김일성광장이, 부근에는 주체사상탑이 있는데 평양의 상징이 되고 있다. 공민 등록법의 규정으로 17세 이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민은 공민증이 정부로부터 발급되고 있지만, 1997년이후 평양 시민은 공민증을 평양 시민증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에, 타 지역 주민과는 구별되고 있다. 이 구별에 의한 영향은 여행에 대한 대우를 들 수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각지의 여행도, 일일이 상세하게 여행 증명서를 신청해서 여행 허가를 얻을 필요가 있지만, 이 "평양 시민증"을 소유하면 여행 증명서 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각지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고 한다. 시내의 거리풍경은 매우 아름답지만, 조금 뒷골목에 들어가면 정비가 두루 미치지 않았다. 노면전차·지하철·백화점도 전력 부족 때문에 지하철 차내의 조명은 항상 소등이고, 점내의 에스컬레이터도 평상시는 멈춰있는 것이 많다. 최근에는 조금 전력 사정이 좋아지고 정전도 줄어 들어있기 때문에 조명도 개선되고 있다. 한국 전쟁 때 미국의 폭격으로 공공건물과 공장건물들이 많이 파괴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도입된 조립식건축기법과 시멘트가공공업의 발달로 동평양과 중구엔 5층 내지 15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건설되었으며, 천리마거리와 창광거리, 역전거리를 비롯한 큰 도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구역은 인민대학습당과 조선미술박물관, 평양학생소년궁전을 비롯한 다양하고 특이한 건축물들이 건설되었다. 평양시는 철도교통과 수송전선의 중심지로서, 평의선, 평부선, 평원선이 지나며, 평양-개성고속도로, 청년영웅도로, 평양-순안고속도로, 평양-원산고속도로가 지난다. 청년영웅도로는 평양시와 남포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로서, 넓고 편리하다. 기후는 냉대 기후로, 특히 겨울의 강수량이 매우 적으며, 날씨가 매우 쌀쌀하다. 소우지역이지만 강수의 70% 이상이 여름철에 집중되어 내린다. [편집] 연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고고학계는 평양에서 단군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단군릉이 발견됨으로써, 평양이 고조선의 수도였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 곳은 낙랑국의 도읍지로, 낙랑 공주와 호동 왕자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427년부터 고구려의 수도였으며, 고려 시대에는 서경(西京)이라고 했다. 947년 고려 정종(定宗)은 도참설에 따라 서경성(西京城)을 쌓고 천도하려 하였으나 귀족들의 불만과 백성들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고, 1136년에는 고려 인종에게 묘청, 정지상, 백수한 등이 서경천도론을 건의하여 추진되었으나,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문벌 귀족들의 반발과 민심의 이탈로 인종이 중지를 명함으로써 좌절되었다. 고려 말기 신돈은 공민왕에게 철원(오늘날의 철원군) 또는 평양으로 수도를 옮길 것을 주장했지만, 공민왕의 미움만 받을 뿐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평안도의 행정 중심지였으며 1896년 평안도가 남북으로 개편되며 평안남도에 소속되었다. 1913년 조선총독부는 평양을 부(府)로 지정했으며,[1] 1927년 이래로 평안남도 대동군에 있던 지역들을 흡수하며 확장되었다. 1946년 9월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평안남도에서 분리되어 중구역, 동구역, 서구역, 남구역, 북구역의 5개 구역을 포함하는 특별시로 승격되면서 "임시 수도"라는 이름으로 북조선의 중심지 역할을 하다가 1952년 행정 구역 체계를 기존의 4단계에서 3단계로 개편하면서 직할시로 변경되었고, 1956년에 만경대구역과 서성구역을 신설하였으며 1967년부터 본평양(本平壤), 서평양(西平壤), 동평양(東平壤)으로 나누고, 1972년 공식 수도가 되었다. 2006년 현재 19개 구역 4개 군으로 나뉘어 있다. [편집] 행정 구역평양시는 2007년 현재 19개 구역과 4개 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19개의 구역과 4개 군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편집] 구역
[편집] 군[편집] 평양공업지구평양직할시는 평양3.26전선공장과 평양대동강텔레비죤공장을 비롯해 평양선교편직물공장과 평양방직공장, 평양기계공업공장 등의 여러 공장들과 기업소가 있으며, 평양시주택사업소와 백두산건설사업소와 같은 건설공업지역들이 있다. 이곳은 북조선의 공업중심지이며, 북조선에서 가장 큰 화력발전소인 「평화력」(평양화력발전소)가 있다. 평천구역에 있는 평양3.26전선공장은 현대적인 시설로 유명하며, 제품의 질을 높이는데 애쓰고 있는 공장이기도 하다. 또한 「평양공업지구」의 한 획을 이루고 있는 이 지역에는 승강기 공장, 한국의「평양」담배로 유명한 평양룡성담배공장 그리고 「모란봉」자전거로 유명한 평양자전거공장과 아동 식료품 공장이 있다. [편집] 유적평양은 고구려의 도읍지였으며, 단군왕검이 도읍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평양 주변에는 수천 년 간 성을 쌓은 흔적을 비롯하여 낙랑, 고구려의 고분군과 선사시대의 고인돌군 등 큰 규모의 무덤이 분포한다. [편집] 세계 문화유산[편집] 교양기관, 사회주의 사상교육 기관
[편집] 교통이 도시의 유일한 공항은 평양순안국제공항(순안구역 비행장)이다. 철도 시설로는 경의선, 평남선, 평원선이 지나다니며 평양지하철이 있다. 평양에는 평양역, 서평양역, 대동강역, 보통강역이 있다. 고속도로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편집] 체육시설[편집] 교육 시설
[편집] 언론기관
[편집] 다른 시설들
[편집] 자매결연도시[편집] 주석[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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