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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
《모나리자》(1503-1505/1507년, 루브르 박물관)
〈최후의 만찬〉(1495 - 1498, 밀라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영어: Leonard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인 인간 이었으며, 어려서부터 인상 깊은 사물, 관찰한 것, 착상 등을 즉시 스케치 하였다.
[편집] 생애1452년 4월 12일 새벽 3시에 레오나르도는 토스카나 지방의 산골 마을 빈치에서 유명한 가문의 공증인인 삐에로 다빈치(Ser Piero da Vinci)와 가난한 농부의 딸인 카타리나(Catarina)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초등 교육을 받은 후, 1466년 14세 때 레오나르도와 그의 가족은 토스카나의 수도였던 피렌체로 이주한다. 15세부터 당시의 유명한 화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밑에서 20대 초반까지 미술 및 기술 공작 수업을 받았다. 제자의 재능을 알아본 베로키오는 다빈치에게 그림을 맡기고, 자신은 조각에만 몰두할 정도로 다빈치를 제자가 아닌, 화가로 인정했다. 레오나르도는 1481년까지 그의 스승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며, 이 시기에 그려진 인물화와 풍경화에서 이미 레오나르도의 독창적인 구도와 분위기 표현 기술을 엿볼 수 있다. 1481년(또는 1482년)에 밀라노의 스포르차 귀족 가문의 화가로 초빙되어 약 12년 동안 화가로서뿐만이 아니라 조각가, 건축가, 기사로서 오늘날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의 다방면에 걸친 천재성을 발휘했다. 이 시기에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암굴의 성모〉(1483년, 루브르 박물관)와 〈최후의 만찬〉(1495~1498년, 밀라노)이 제작되었다. 〈암굴의 성모〉에서는 레오나르도의 특유의 화법인 이른바 환상적인 색감을 살리는 스푸마토(Sfumato)가 첫선을 보이게 되며, 뒤에 이 화법을 바탕으로 유명한 모나리자(1500~1503년, 루브르 박물관)가 그려졌다. 또한 당시 로마 가톨릭의 통제에 따라 제작되던 교회 미술계의 풍토를 깨고,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 등 자신의 소신에 따른 작품 활동을 했다. 1516년 프랑소와 1세(François I)가 있는 프랑스의 끌로 뤼세(Clos Lucé)로 그의 제자인 프란세스코 멜지(Francesco Melzi)와 함께 이주한다. 그는 3점의 그림(모나리자(라 조콘다), 성 안나와 성 모자, 세례자 요한)을 가져간다. 1519년 4월 23일 유언을 남기고 5월 2일 사망했다. 그의 나이 67세였고, 조르조 바사리는 레오나르도의 전기에서 레오나르도가 프랑소와 1세의 품안에서 숨을 거뒀다고 적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평생 독신으로 자식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제자이자 동반자였던 프란세스코 멜지(Francesco Melzi)가 그의 유산을 상속한다. 1570년 프랑세스코 멜지의 죽음으로 그가 평생 간직하고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엄청난 양의 크로키와 그림이 세상에 나온다. [편집] 대표 작품
[편집] 같이 읽기[편집] 다른 작품 속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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